주말농장을 계약하고 나면 가장 설레는 순간이 바로 '장비 쇼핑'입니다. 마트나 다이소의 원예 코너에 가면 예쁜 모종삽과 알록달록한 앞치마가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이왕 농사짓는 거 예쁘게 입고 예쁜 도구로 해야지!"라는 마음으로 바구니를 채우다 보면 결제 금액에 깜짝 놀라곤 합니다.
하지만 막상 밭에 나가보면, 그 예쁜 장비들은 한 번만 써도 진흙투성이가 되고 플라스틱 모종삽은 딱딱한 돌에 부딪혀 쉽게 부러집니다. 첫해에 멋모르고 비싼 장비들을 샀다가 후회했던 제 경험을 바탕으로, 초보 도시농부에게 '진짜로 필요한' 필수 농기구와 불필요한 과소비를 막는 실전 준비물 리스트를 싹 정리해 드립니다.
1. 대체 불가능한 농사의 신, '호미'와 '물뿌리개'
주말농장에서 단 하나의 도구만 가져가야 한다면 주저 없이 '호미'를 선택해야 합니다. 외국에서도 아마존을 통해 불티나게 팔린다는 한국의 호미는 밭을 파고, 씨앗 심을 골을 내고, 잡초의 뿌리를 캐내는 데 그야말로 만능입니다.
팁: 다이소에서 파는 얇은 원예용 삽보다는, 철물점이나 시장에서 파는 튼튼한 '쇠호미'를 5천 원 내외로 구매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돌이 많은 밭에서도 휘어지지 않고 오래 씁니다.
두 번째 필수품은 '물뿌리개(조로)'입니다. 밭에 갈 때마다 가장 많이 하는 일이 바로 물 주기입니다.
팁: 너무 작은 예쁜 화분용 물뿌리개는 5평짜리 밭에 물을 주려면 수십 번을 왔다 갔다 해야 합니다. 반대로 15리터 이상은 물을 꽉 채우면 너무 무거워 들기가 힘듭니다. 성인 기준으로 '8~10리터' 용량의 플라스틱 물뿌리개가 가장 적당합니다. 샤워기 헤드 부분이 분리되어 세척이 가능한 제품이 흙막힘을 방지하기 좋습니다.
2. 내 몸을 지키는 필수 방어구 3대장
농사는 흙, 자외선, 그리고 벌레와의 싸움입니다. 내 몸을 보호하지 않으면 농사 다음 날 출근해서 온몸의 근육통과 피부염으로 고생하게 됩니다.
작업 방석 (일명 엉덩이 의자) 농사 장비 중 가장 '돈값'을 하는 물건입니다. 잡초를 뽑거나 수확을 할 때 쪼그려 앉는 자세는 무릎과 허리에 엄청난 무리를 줍니다. 고무줄로 허리나 엉덩이에 차는 스티로폼 방석(농업용 작업 방석)을 5천 원 정도에 구매해 보세요. 앉았다 일어났다 할 필요 없이 엉덩이에 붙인 채로 이동할 수 있어 농사의 피로도가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반코팅 장갑과 쿨토시 흙을 만질 때 맨손이나 얇은 비닐장갑은 절대 금물입니다. 손톱 밑에 흙이 끼는 것은 물론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흙 속 세균에 감염될 수 있습니다. 손바닥 부분만 고무로 코팅된 '반코팅 장갑(목장갑)'이 통풍도 잘 되고 미끄러지지 않아 최고입니다. 다이소에서 10켤레 묶음으로 사두면 1년 내내 든든합니다. 또한 여름철 땡볕에 팔이 타거나 풀에 스쳐 상처가 나는 것을 막기 위해 긴 팔 옷이나 쿨토시도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농업용 장화 (또는 버릴 운동화) 비 온 다음 날 밭은 거대한 진흙탕입니다. 아끼는 운동화를 신고 갔다가 세탁으로 지워지지 않는 흙물에 눈물을 흘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발목 위까지 올라오는 가벼운 EVA 소재의 농업용 장화나, 더 이상 안 신는 헌 운동화를 '농장 전용 신발'로 트렁크에 상비해 두세요.
3. 초보자가 절대 '미리 사면 안 되는' 물건들
초기 예산을 아끼기 위해 굳이 처음부터 사지 않아도 되는 물건들이 있습니다.
대형 농기구 (삽, 괭이, 갈퀴): 밭 전체를 뒤엎을 때 쓰는 큰 농기구들은 보통 농장에 공용으로 구비되어 있습니다. 1년에 한두 번 쓸까 말까 한 큰 장비를 개인 돈으로 사서 차에 싣고 다니는 것은 엄청난 낭비입니다.
온갖 종류의 비료와 영양제: 처음 밭을 만들 때 농장주가 밑거름을 쳐준 곳이라면, 당장 비료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작물이 자라는 상태를 보고 잎이 누렇게 변하거나 열매가 맺힐 때쯤(추비 시기) 필요에 맞춰 소량만 구매하는 것이 좋습니다. 미리 사두면 보관만 어렵고 냄새만 납니다.
4. 트렁크에 항상 챙겨둬야 할 소소한 꿀템들
모기기피제와 버물리: 밭에는 산모기와 날파리가 정말 많습니다. 작업 전 옷과 모자에 기피제를 듬뿍 뿌려야 가려움의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큰 비닐봉지나 종이 가방: 솎아낸 잡초를 버리거나, 수확한 상추를 담아갈 때 꼭 필요합니다. 의외로 밭에 도착해서 "상추 담아갈 봉투를 안 가져왔네!" 하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 핵심 요약 정리
예쁜 원예 도구보다 철물점에서 파는 튼튼한 '쇠호미'와 8~10리터 용량의 '물뿌리개'가 실전 농사의 최고 무기입니다.
무릎과 허리를 지켜주는 '작업 방석(엉덩이 의자)'과 흙, 자외선을 막아줄 반코팅 장갑, 장화는 반드시 준비하세요.
1년에 한 번 쓰는 큰 삽이나 당장 쓰지 않을 비료는 미리 사지 말고, 농장의 공용 장비를 적극 활용하여 초기 비용을 아끼세요.
장비까지 완벽하게 세팅하셨다면, 드디어 흙을 만질 시간입니다. 씨앗을 품을 폭신폭신한 보금자리를 만들어주어야 작물이 튼튼하게 자랍니다. 다음 4편에서는 <밭 만들기 기초: 밑거름 주기와 이랑/고랑 만들기>를 통해 허리 덜 아프게 밭을 세팅하는 요령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할 때 주말농장에서 가장 유용할 것 같은, 혹은 꼭 사보고 싶은 장비는 무엇인가요? 이미 텃밭을 가꿔보신 분들이라면 여러분만의 '최애 장비'를 댓글로 추천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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